칼을 보습으로 만드는 사회를

 

2012년 11월 27일

   

 

    모든 인간적인 경험은 우리들에게 "세상 역사는 전쟁, 증오와 파괴의 역사다'고 말한다. 인간은 평화를 갈망하고 종종 각종 전쟁으로 마무리되는 새로운 죄악 속으로 항상 새롭게 끌려 들어간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도 또한 피해를 입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 미가는 백성들에게 심판을 선포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미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하나님의 안목으로부터 보며 자신들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나아오기를 바란다. 단지, 여호와 하나님만이 친히 이러한 화평을 궁극적으로 가져올 수 있을지라도, 변화가 시작된다.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이것으로써 더 이상 무기가 필요하지 않고 백성들도 더 이상 전쟁으로 끌려갈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직 이런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다. 미가 선지가가 선포하는 내용을 사람들은 그렇게 따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들은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다. 그 때문에 이 약속을 눈 앞에 간직하고 작은 우리들 세상에 화평을 위해 헌신하는 일은 보람있는 일이 될 것이다.

    뉴욕에 있는 UNO 건물 앞에는1959년 소련이 UNO에 선물한 부체티취 Wutschetisch란 러시아 작가의 구리 조각상이 서 있습니다. 이 조각은 "칼을 보습으로 만드는 한 사람"을 묘사하고 있는데, "우리들은 우리의 칼을 보습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1980년 구동독 시절 브레트쉬나이더 Bretschneider 목사님은 이 동상의 사진을 책갈피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1981년에는 글자와 함께 꼬리표로 인쇄되어 수 천명의 청소년들이 가슴에 달고 다녔습니다. 마침내 교사, 경찰들과 회사 관리들은 젊은이들이 이것을 달고 다니지 못하도록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이 꼬리표의 원전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전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큰 도전은 이 상징에 따라 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나중에 동서독 사이에 놓인 장벽을 평화적으로 무너뜨리도록 변화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선거철을 맞아 입으로는 평화를 말하면서도 남북 대립을 주장하는 세력들이 이 말씀의 참뜻을 새길 수 있도록 중보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미 4, 1 - 10   눅 6, 12 - 19   (지난 묵상 링크)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미 4, 3)

   

 

배경 찬송은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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