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칠 피난처

 

2014년 12월 26일

     

 

    도망을 치라고? 그것도 아기 예수를 구하기 위해서? 하지만, 예수는 바로 우리의 구세주요 우리는 그에게 속하지 않는가?! 그렇다!  그렇지만, 때로는 우리는 도망쳐야만 한다. 도망으로 우리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결코 잃지 않게 된다.
    예수를 배제시키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해명하고자 하는 권력자들은 항상 그를 뒤쫓고 있다. 그 당시에 헤롯왕처럼, 자기 두려움에서 "아기를 산 채로 잡으라!"고 명령한다. 다른 헤롯의 권력자들은 "성공하라! 부유하고 건강하며 선하게 살라!  어떤 값을 지불하더라도. 이것을 구하라. 우리가 저것을 믿게하라. 나사렛 출신 불쌍한 사람, 십자가에 달린 사람, 구유에 뉘인 아이를 믿는 일은  단지 방해가 될 뿐이야"라고 더 부드럽게 소근거린다.

    도망을 친다고?! 우리는 예수를 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 우리는 피난처를 필요로 한다. 심지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자주 필요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피난처를 찾고 예수와 함께 가야 할 것이다. 때로는 노련한 선생처럼, 때로는 보호가 필요한 아이처럼 예수께로 되돌아서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누구며, 무엇을 원하며 그리고 원치 않는지 확실해질 것이다.

     세상일에서 낙심하고 추구하는 일마다 실패했을 때, 우리는 텅 빈 교회로 들어가 십자가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조용하고 텅 빈 교회에 앉아 기도하다가, 예수님이 매달린 십자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실패한 예수 그리스도?! 하지만, 예수는 빛나는 가시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우리가 마음껏 심호흡할 수 있는 피난처인 것입니다. 양 사방이 성탄절의 의미 자체보다는 즐거움과 잔치에 빠져있을 때, 조용히 갓난 예수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처를 찾아가는 요셉과 마리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마 2, 13 - 23   히 1, 1 - 6  (지난 묵상 링크)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마 2, 13)

   

 

배경 찬송은 Fischer-Dieskau의 "Ich steh an deiner Krippe hie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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