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견지명

 

2011년 11월 25일 

  

 

    오늘말씀에 등장하는 이 비유와 오늘날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각종 현실은 아주 큰 차이가 없다. 변함없이 항상 거듭해서 "우리가 누구에게 봉사하느냐? 우리는 어떤 척도를 따르고 있는가?"라는 문제가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단지 직접적인 이익이나 소득에만 관심이 있다. 이러한 목표가 다른 모든 것들을 종속시키게 된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나님으로부터 '땅을 다스릴 수 있는' 권력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이 권력은 '농사 짓고 땅을 보존하는' 봉사의 권력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항상 반복해서 '하나님과 인간에게 봉사토록 하기 위해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에게 권력을 부여하실 것'이라고 강조하신다.

    시야에서 이런 목표를 놓치는 사람들은 모든 다른 것들을 종속시키는 자기 자신의 욕망의 노예, 권력이나 이념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이것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봉사를 왜곡시키고 파괴적인 힘들이 각종 문들과 대문을 열어젖히도록 하며, 마침내 심판받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자신을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 폭넓은 안목을 지닌 대단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의 안목이 단지 자신 안에 머물기 때문에,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을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대단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익숙치 못한 고통을 볼줄 알며 스스로 감동하는 일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는 일은 시야를 넓게 해줍니다. 우리들이 자아에만 머물지 않고, 우리 자신보다 더 중요한 일에 봉사하게 합니다.
    절대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국민의 참뜻을 조금이라도 파악하는 넓은 시야를 가졌었더라면, 절대다수의 의석수 만을 믿고 국민과 소수 야당의 뜻을 무시하며 단독으로  날치기, 그것도 비공개로 "한미 FTA"를 졸속으로 통과시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수 국민들의 참된 뜻을 고려하고 헤아리기 보다는, 자신들의 권리만을 생각하는 좁은 안목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수많은 국민들이 다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오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더 경악할 일은 의사표명을 하는 국민들을 향해 추운 겨울에 물대포를 퍼붓는 파렴치하고 수치스러운 일을 일삼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결과와 과정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인지' 묻게 됩니다. 선견지명을 가지고 힘들게 땀흘리며, 각종 고통에 눈물을 흘리는 국민들을 위로할 수 있는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들이 조국 땅에 많이 배출되도록 중보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24, 45 - 51   벧전 1, 13 - 21  (지난 묵상 링크)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마 24, 45)

   

 

배경 찬송은 "어찌 하여야"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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