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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에서 친구가 되는 용서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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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25일 |
자녀들끼리
다툼이 있으면, 이들은 감정이 상한 채로 놀기는 하지만 결코 오래 즐겁게는 되지 않는다. 모욕은 성인들을 평생 따라 다닐
수 있으며, 용서는 어렵게 여겨진다. 대부분 상처들은 아주 견디기 힘들며, 이후로도 몇 십년 동안이나 아픔을 준다. 그런데, 남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또한 스스로도 용서받지 못한채로 살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단지 이렇게 용서를 통해서만이 우리 공동체와 우리의 심령이 치유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안보와
경제발전이란 이름으로 "긴급조치"를 남발하던 독재체제인 '유신 공화국' 아래서, 잘못된 정책이나
사회문제, 정권이나 심지어 노사문제에 대한 불만을 품고 의사표시를 하거나 친구 간에 이러한 비판적
시각으로 대화만 해도 마치 '북한정권의 조종이라도 받은 죄인"의 누명이 씌어지고 인권이 무참하게 짓밟히던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10, 26 사태로 그 정권이 불운한 종말을 맞았기에 대부분 국민들은 그 당사자들을 용서하고 기억 속에
묻었으며, 이런 어두운 역사를 잘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 장한 국민들이 또한 대한민국 국민들일 것입니다.
분명, 그 독재권력으로 두 부모를 다 비명에 잃은 사람이 바로 자연인 박근혜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고후 2, 1 - 11 마 27, 39 - 44 (지난 묵상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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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무슨 일에든지 누구를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고후 2, 10) |
배경 찬송은 "용서하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