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본질과 부차적인 것

 

2016년 2월 23일

        

 

    세상에서 삶은 아주 힘이 들고 수고스러울 수 있다. 단지 삶이 "씻는 계명"과 "금식"만으로 이루어졌다면, 무엇보다도 그러할 것이다. 바리새인은 위생적으로만 모범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선한 의도에서도 그러했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며, 이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이 자신들 믿음을 단지 외적인 형식을 중시하고 자신들 관점에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평가하는 것'을 비난하셨다. 예수님은 경건한 자들에게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13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또한 부차적인 일들을 믿음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하는 위험에 처해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무엇보다 우리들 마음이 중요하며, 예수님께는 우리의 존재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내적으로 바르지 못하면, 외적으로도  또한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사함을 받은 죄인을 원하시지, 욕구불만을 가진 거룩한 사람을 결코 원하시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과 행동으로 따르는 일이며 흑백논리를 따져 우위를 가리는 것이 결코 아니라, 다양하고 수많은 색깔과 섬세한 차이를 서로가 인정하는 일입니다. '인간들이 아주 다양하다'는 사실 이상으로, 우리 각자의 신앙 특성들도  아주 상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독일 신앙인들 모임에서는 결코 춤을 추지 않고, 다수 미국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적으로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홀란드에서는 교회 앞에서 담뱃불을 붙이는 일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그리스도인들끼리 기꺼이 한 잔 정도 와인을 즐겨 마십니다.
    빈번하게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를 혼미스럽게 하는 것이 아주 사소한 일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내가 믿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믿지 않는다'는 결론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혼란에 대해 우리에게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는  "본질적인 일에 일치를, 부차적인 일에 자유를, 하지만 모든 일에서 사랑을"이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핵심은 '우선적으로 예수님이 중요하며 우리 자신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 가운데 거하고 있는 사실'임을 고백합니다. 부차적인 문제로 믿음의 본질에서 흔들리거나 실족하지 않을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막 7, 1 - 23   신 4, 27 - 40 (지난 묵상 링크)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막 7, 15)

   

   

 배경 음악은 "믿음의 경주"입니다.

    

 2 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