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고백과 대담한 용서

 

2012년 2월 23일

  

 

    사람들은 산행이나 산책하는 도중에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이것을 예수님도 잘 알고 계셨다. 게네사렛 호숫가의 벳세다와 좀 더 북쪽에 놓여있는 빌립보 가이사랴 사이에 놓여있는 도정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면서, 여론의 동향을 물어보신다.
    이에 베드로는 "
주님은 언약된 구세주인 그리스도이시니"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참으로 현명하고 적절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예수님이 십자가형으로 돌아가시게 되실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자신이 '예수님을 예루살렘에서 배신하고 떠날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것을 예상하시고 계셨다. 마침내 베드로는 '정확한 지식과 선한 의도로부터 항상 담대한 고백과 선한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했었다. 우리들은 실수하고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며, 우리 자신들의 요구에도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주는 그리스도이시니이다"는 베드로의 말이 뒤집을 수 없이 간주되는 사실에 더욱 위로받게 된다.

    카톨릭 교리의 가르침에 따르면, 베드로는 로마의 첫번째 주교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모든 교황들은 자신들의 후계자로 에우세비우스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에우세비우스는 담대한 주교였는데, 4세기 초에 로마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고 학살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몸을 피신하고 교회에 속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그 당시에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의 공동체에 아직도 속하는지?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배신자를 가지는 일을 아직도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해 논쟁했습니다. 그런데, 에우세비우스 주교는 화해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뉘우치고 용서를 빌었기 때문입니다. 에우세비우스는 예수님을 배신한 적이 있었던 베드로를 상기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도 커서 과오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설 자리를 베푸십니다. 이런 확신 때문에 에우세비우스는 교회로부터 추방을 당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화해를 위한 그의 고백은 믿음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은 고백, 에우세비우스와 같은 화해를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막 8, 27 - 33  눅 23, 27 - 31  (지난 묵상 링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막 8, 29)

   

 

배경 찬송은 "Wenn Friede mit Gott meine Seele durchdringt"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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