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것을 성취하는

 

2011년 7월 21일 

  

 

    외딴 섬에 홀로 살고 있지 않는 사람은 "서로 뜻을 같이 하는 일" (5절)이 얼마나 어려울 수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이 결혼 생활, 가정 생활 그리고 믿음의 공동체 생활이든지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모든 곳에는 서로 상반된 각종 의견과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이에 대한 성경적인 척도는 "
서로 뜻을 같이 하도록 노력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부합되고 일치한다. 이것이 성공하게 될 지는 '우리가 어떻게 약한 자들을 대하느냐'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인내"라는 단어는 무엇보다 단서가 된다. 다른 사람들과 인내하는 일은 결코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 가운데, 즉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인내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삶 가운데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이웃을 대해야만 하는 좋은 이유이다. 그러면, 이 가운데 '누가 강한 사람이고 누가 약한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은 자연적으로 뒷전으로 물러나게 될 것이다.

    원칙적으로나 합리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바로 세상사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인 원칙이나 이치에 어긋나는 어떤 일을 부조리할 정도로 과감하게 시도하면, 그 때 불가능한 일을 성취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부모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몇 걸음을 옮길 수 있던 어린 아이가 갖은 시도 끝에 마침내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는 것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각종 장애들을 안고 살며, 어느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마침내는 도움을 통해 어느 순간에 당당하게 "홀로 서기"도 합니다.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이런 우리에게 '믿음이 강한 사람이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도와 더불어 기쁘함'에 대해 권면하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밀어붙이는 4대강 사업으로 세금을 홍수에다 무차별적으로 떠내려 보내는 모습과 겹쳐서, 세금으로 가난하고 약한 자들에게 마땅히 베풀고자 하는 일을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치부하면서까지 수십억의 세금을 낭비하면서 주민투표를 고집하는 저의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약자가 건전해지지 못하면 전 공동사회가 병들게 됨을  깨닫게 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15, 1 - 6   벧전 1, 22 - 25  (지난 묵상 링크)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롬 15, 1)

   

 

배경 찬송은 박형근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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