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축복하고 중보하는

 

2013년 2월 21일

   

 

    해볼 만한 복수와 더불어 자유로운 말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이미 어렵겠지만, 칭찬하는 말로 답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될까?! 구약 성서의 방식대로 (출 21, 24), 눈에는 눈 그리고 이에는 이로 복수하는 것이 단순히 훨씬 더 공정한 일이 아닐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원수 사랑"은 전혀 다른 차원을 가지고 있다. 철학자 니체 Nietzsch가 의미하는 것처럼, 이것은 '노예와 약자들의 미덕'은 결코 아니다. "원수 사랑"은 정반대로 악의 소용돌이를 깨고 독재자들을 무너뜨리며 인간을 변하게 할 능력을 가졌다. 말다툼과 허튼소리에는 핵무기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다양한 색깔의 하나님에 대한 증오에 맞서 심판이 아닌 사랑을 제시하시고 십자가에 몸소 달리신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눅 23, 34), 우리들에게 화평을 베푸신다. "원수 사랑"은 우리들을 짓밟는 자들에게 아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것은 각종 희생에도 감내하며 각종 가해자들을 얻고자 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인 것이다.

    오늘 본문의 권면은 현실 세계에서 실천하기 아주 어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적어도 이런 안목 속에 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남을 저주하고 모독하면서 폭력을 일삼는 사람도 순수하고 착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또 누구나 현재의 모습에서 변화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엄청나게 박해했던 다소 출신 사울은 예수를 만나고 나서 사도가 되었고 또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은 사람들을 저주하고 모독하며 폭력까지 휘두르는 사람이 어떤 중한 짐을 지고 힘들어 하는지'를 헤아리고 축복하며 중보기도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기존 세상에서 흔히 통용되는 가치관 보다는 다른 안목을 가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눅 6, 27 - 35    요 1, 43 - 51  (지난 묵상 링크)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독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 6, 28)

   

 

배경 찬송은 "그 사랑이 내 안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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