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시면 저를 ...

 

2016년 1월 19일

        

    동기 유발을 훈련시키는 사람들의 주제어는 "원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당신이 어떤 것을 실제로 원하면, 당신은 또한 그것을 다 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이것이 과장된 것이다'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단지 자신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아무도 어떤 것을 할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 훨씬 더 많은 것이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얼마나 간절히 원하든지에 상관없이, 우리에게는 수많은 것들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만성적으로 아픈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늘 다시 감지하게 된다. 그 때문에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문둥병자의 판단은 예수와 만남에서 귀기울이도록 한다.

    그는 '예수님께는 다른 척도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것을 하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뜻이나 의지보다 더욱 크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이 사람의 고통이 예수를 움직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그것을 행하고자 한다" 말씀하시자 병이 사라졌다. 치유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병자의 어조인 것이다. 그는 요구하지도 간구하지도 않고, 단지 확신한다. 모든 다른 것을 그는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는 말로 예수님께 맡긴다.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아니다. 물론 자신의 치유를 자기 자신만을 위해 간직할 수도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기쁨이 너무나도 크나큰 것이었다.

     오늘 말씀과 관련해서, 우리 자신의 의지 없이는 물론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음을 고백해 봅니다. 교통사고로 다리와 허벅지를 심하게 다쳐 수술한 뒤에 고통으로 전혀 걷지 못하는 한 소녀가 자신이 당한 사고와 현재 처지를 한탄하고 일어서서 걷는 것을 거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그가 요한복음에 나오는 38년간 걸을 수 없는 앉은뱅이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가 앉은뱅이에게 "너는 건강해지기를 원하느냐?"고 묻자, 앉은뱅이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만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단지 "일어서서 가라!"고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이 자신에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바로 일어서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런 병자에게는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마음의 병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바라는 뜻과 말씀을 믿는 간절함을 가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막 1, 40 - 45   요일 2, 12 - 17 (지난 묵상 링크)

       

  

한 나병환자가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막 1, 40)

   

   

 배경 음악은 "나의 등 뒤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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