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손과 작은 손으로

 

2012년 2월 17일

  

 

    귀가 먹고 말을 더듬는 한 사람을 예수님께로 데려왔었다. 듣지도 못하고 그 결과로 단지 불분명하게 더듬거리면서 말할 수 있을 뿐인 사람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고독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따로 데려가시고 조용한 가운데 행하신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 손짓으로 이해시키시고, 그의 병든 신체부위를 만지신다. 예수님은 시선을 하늘로 향하시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위해 간구하신다. 탄식하는 예수님은 치유자이시며, 동정하시는 주님이시다. 예수님은 아람어로 "
에바다! - 열려라!"고 말씀하신다. 조금 후에 귀머거리는 마침내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제대로 말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함께 체험했던 사람들은 "선하게 주님은 모든 것을 행하셨다"고 한 음성으로 찬양하게 된다. 이것을 통해 그들은 창조역사에서 "하나님이 지은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 1, 31)는 찬양을 받아들인다. 예수님이 행하신 일은 하나님의 선하신 사역인 것이다. 이 사건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우리들에게 약속 (사 35, 5 - 6)하고 있는, 바로 최종적이고도 완벽한 하나님의 새 창조의 시작이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을 대하면서, 불치병을 앓고 있는 한 아이를 가진 아버지가 똑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아버지에게 보낸 위로의 편지를 떠올려 봅니다. "나는 아들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고, 아들도 나와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못합니다. 어느날 아침, 아이가 내 침대로 와서 옆에 누워있었습니다. 나는 큰 손으로 작고 여린 아이의 손을 잡고 찬송가를 나즈막하게 불렀습니다. 아이는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예수님은 이 아이를 사랑하시며 예수님은 이 아이를 통해 나를 매일 만나주심'을 굳게 믿었습니다. 나는 영원한 영광 가운데 이 아이가 겪고 있는 완벽하지 못한 현재의 부족함이 결코 공허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확신을 나의 손을 통해 아들의 작은 손에다 쓸 수가 있습니다. 비록 내가 아이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아무런 것도 말할 수 없을지라도"라고 쓴 그 아버지는, "하지만, 이렇게 나는 아이에게 이것을 계속 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전하는 일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 이외에는 아무런 것도 중요치 않습니다"고 자신의 편지를 끝맺고 있습니다. 주어진 각종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전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막 7, 31 - 37   눅 12, 42 - 48  (지난 묵상 링크)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막 7, 34)

   

 

배경 찬송은 "Jesus zu dir kann ich so kommen wie ich bin"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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