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만들지 않은 것

 

2013년 8월 16일

     

 

    그 당시에 '장막'은 귀중하고 대단히 아름다웠었다. 금 색칠한 이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생활을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의 내부 공간은 대제사장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찾아가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과 화해하시는  지성소였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이런 가시적인 성전을 가지지 못했었다. 하지만,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친히 나타나신다. 화해하게 될 예수님의 제물이 자상에서 성전이 아니라, 십자가 상에서 시작되었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은 땅과 하늘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장차 올 것들과 이 세상의 모든 선한 은사들을 훨씬 더 능가하는 것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여기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베푸시는 화해와 용서 안에서 다가오게 될 세상을 미리 맛보게 된다.

   광복절을 맞으면서 일본 극우파들의 행동을 보면서, 용서와 화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용서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용서는 적대관계를 친구로, 불신을 믿음의 관계로 변화시킬 수 있고 쌍방의 관계가 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용서의 미덕을 잘못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오히려 용서하지 않은 것보다 더 많은 후유증과 화근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교훈을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와 잘못된 한국 현대사에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이 주변국에 용서를 빌고 반성해야 할 날에 정작 광란적으로 과거 제국주의의 야욕을 드러내는 것이 그것이며, 박근혜 정부가 반성하는 자세와는 정반대로 과거 유신독재의 그늘을 뒤집어쓰고자 하는 것이 좋은 예일 것입니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인다 할지라도, 불의는 불의일 뿐이고 범죄는 범죄로 여전히 남아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비록 잘못된 행위를 기꺼이 용서했을지라도, 그 용서에 걸맞는 참회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범죄와 불의는 결코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화해는 쌍방의 위치에서 상대방에게로 다가가 서로 손을 잡고 영육간에 얽힌 장애물을 과감하게 걷어내는 것임을 고백해 봅니다. 과거의 망령에 잡힌 일본과 한국의 '자칭보수'들이 '손으로 만들지 않은' 참된 화해를 마음에 품을 수 있도록 중보 기도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히 9, 1 - 15   살전 4, 9 - 12  (지난 묵상 링크)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히 9, 11)

   

 

배경 찬송은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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