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들기 위한 의지

 

2014년 10월 14일

      

 

    요시야 왕이 늘 스스로에게 물으며 살았던 것은 "다윗왕은 무엇을 기꺼이 했을까?"라는 질문이었다. 그는 이런 가르침을 선하게 사용했었다. 열여섯 살 또래 소년소녀들처럼, 요시야는 사춘기를 극복해야만 하는 일뿐 아니라, 나라도 다스려야만 했었다.
    '어린 나이로 왕좌에 오른 어린 통치자는 결정을 주저하며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을 누가 생각했을까'하고 눈을 비빈다. 모범으로서 위대한 왕 다윗과 조언자로 하나님의 계명은 요시아가 자신의 인생을 확고하게 살도록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을 기꺼이 하셨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몸소 실천하셨던 확고한 사랑에 방향 감각을 잡는 일은 모든 것을 올바르게 행하길 원하고 현대적 우상들의 잘못된 약속에 꽁무니만을 뒤따라 다니는 일로부터 지켜준다. "예수님은 무엇을 기꺼이 하셨을까?"는 질문은 성인들을 위해서도 좋은 좌우명이다.

    요시야가 하나님을 찾는 이야기와 개 사육에서 "마음에 들기 위한 뜻"이란 표현을 생각해 봅니다. 개들은 사이좋게 지내기를 원하고 싸움하지 않고 스스로 항복하는 소위 "상대 마음에 들기 위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특성은 물론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일입니다. 갈등을 피하고 자기 자신의 원래 관심을 감추거나 보류하는 소위 "아부" 내지 "비위 맞추기"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다른 사람 마음에 들기 위한 의지"는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원래 사도들은 전적으로 각종 갈등에 놓여있었습니다. 열두 살 밖에 안되는 어린 예수가 부모로부터 달아난 사건부터 시작되어 성전을 정결케 하는 소란으로 끝이 납니다. 예수께 하모니는 아마도 추구할 가치가 있는 목표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인간들을 위해 친히 십자가 상에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랑은 결국 누구에 마음에 들고자 함이 아니라, 이웃을 도우기 위함임을 고백합니다. 단순히 사이좋게 지내기보다는 참된 사랑을 소중히 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대하 34, 1 - 7  요 13, 31 - 35  (지난 묵상링크)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대하 34, 3)

   

 

배경 찬송은 "내 발을 씻기신 예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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