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과 구원이신 그리스도

 

2012년 9월 14일

  

 

    모범이나 본보기를 가지는 일은 좋은 일이다. 우리들에게 방향 설정을 해주는 사람은 우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하지만, 이들의 삶이 또한 아주 고귀하고 영웅적일 수 있는 모든 본보기들이 우리들에게 삶의 깊은 구렁들 그리고 죽음의 골짜기를 통해서 동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본보기들은 멀리 도달하지 못한 곳에 머문다.
    예수 그리스도는 고린도에서 일부 사람들에게만 단지 본보기가 되셨다. 이들에게 예수는 영적인 모범, 자신들의 교회에서 장식적인 인물 그리고 양자택일적 인간존재의 전형으로서 족했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를 위해 부활하실 필요까지 없었다. 본보기가 되시고자 우리를 위해 죽을 필요까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단지 하나의 모범으로 계신다면, 우리들은 곤고하며 아직 구원을 받지 못한 인간들로 머물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들이 흉내내거나 모방해야만 하는 그 어떤 일도 우리들에게 해보이지 않으신다. 예수님은 우리 스스로 결코 할 수 없는, 즉 우리를 위해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는' 결정적인 일을 행하신다. 예수님은 죽음의 장벽을 허무시고 우리들에게 영생을 베푸신다.

    예수님과 모범 사이의 차이는 예배와 박물관 사이의 차이와 같습니다. 모범이나 본보기를 위해 유적이나 박물관이 있으며, 작품에 대해 각종 전시나 강연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각종 저서들이 쓰여지고 영화도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를 위해 구경꾼, 독자나 방문자들이 늘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전혀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서, 더 정확하게는 기도, 설교와 성찬식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가운데서 '예수님에 대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대화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2천년 전에 죽은 나사렛 예수의 현명한 사상에 대해서가 아니라, "영생의 말씀" (요 6, 68)을 듣게 됩니다. 바로 이 가운데서 우리는 한 조각 "생명의 떡"과 한 모금 "구원의 잔"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 것만을 바라는 불쌍한 존재에만 머물지 않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고전 15, 12 - 19    눅 23, 44 - 49  (지난 묵상 링크)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 15, 19)

   

 

배경 찬송은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눈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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