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는 절망의 경우수가 없나니

 

2013년 2월 14일

   

 

    세리 레위와의 만남 속에서 왜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는지가 분명해진다.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이 "되돌아서도록" 부르신다. 이렇게 오늘날 전혀 이해될 수 없는 용어 "회개"로 번역할 수 있다.
    세리가 로마의 명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속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당시의 행동표본을 무시하고 증오의 대상인 세리에게 관심을 가지신다. 예수님은 비난이나 경고의 손가락질로서 그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조건없는 사랑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감동적이 부름으로 그를 만나신다.

    레위와 우리 자신들은 '우리가 하나님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살아도 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용서를 베푸시고 믿음을 통해 의롭게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지"인 상태에서 우리는 머물 필요가 없다. 이것은 또한 우리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리는 어떻게 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가?! 각종 비난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아니면, 어떤 사람도 결코 포기하시지 않는 예수님의 사람으로 그들을 만나는가?!

    하나님 품 안에서 새로운 시작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이 늘 존재함을 고백합니다. 이 가능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체험할 수 있고, 이 믿음을 통해서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됩니다. 물론 사람들이 변하고 소망을 얻는 일에도 또한 실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가운데서는 절망의 경우는 결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운데 소망을 가지고 믿음을 통해서 소망에 이를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눅 5, 27 - 32    수 3, 9 - 17   (지난 묵상 링크)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5, 32)

   

 

배경 찬송은 "축복의 통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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