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쉬비츠에 하나님은 계셨을까!?

 

2015년 10월 13일

        

    욥의 친구들은 일주일을 침묵하면서 땅바닥에 앉아 욥 곁에서 식사했었다.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이었다. 이제 엘리바스가 말하기 시작한다.
    우리들이 엘리바스의 말들에 감명을 받기 전에, 우리는 욥기서 마지막에 친구들 말들에 대한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욥 42, 7)는 하나님의 판단을 읽어보아야만 한다.

    하나님은 모두를 삭제하신다. 욥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고통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과 새롭고 놀라운 만남을 통해 '하나님이 문제시하는 것'을 인식한다.우리는 하나님을 피고석에 앉히고 판결을 내릴 권리를 결코 가지고 있지 않다. 하나님에 의해 지시된 제물과 욥의 중보 기도를 통해 친구들은 사면을 받게 된다. 이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박힌, 부활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서실 예수 그리스도' (히 4, 14 - 16)를 가리키고 있다.

    세상에서 살면서 우리 자신들도 예외없이 욥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바로 2차 세계대전 때, 아우쉬비츠 강제수용소나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들이며, 오늘날 북한 강제수용소에서 갖은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들이 고난을 당했던 "강제수용소에서 하나님은 어디에 계셨을까요?" 아우쉬비츠 강제 수용소의 생존자들은 자신들의 팔뚝에 새겨진 수용소 죄수 번호를 보이면서, "나도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하나님도 그곳에 계셨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 못박힌 하나님의 비밀"임을 고백합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욥 4, 1 - 21  행 14, 8 - 18 (지난 묵상 링크)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욥 4, 17)

   

   

 배경 음악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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