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법 아니면 하나님의 법?

 

2015년 1월 12일

     

 

    하나님 앞에서 선한 행위와 무흠한 삶을 자랑하고자 한다면, 그야말로 헛된 일이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을 의롭게 대하지 못한다. 하지만, 율법이 하나님 앞에서 전혀 아무런 소용이 없다면, 모세의 율법은 무엇을 위해 아직 선할 수 있단 말인가?!
    율법은 우리 삶 속에서 익숙해진 주름살을 마치 우리에게 가차없이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다. 이것은 '모든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척도에 따라 어떻게 살지 못했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기억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 가운데서 무엇이 바르게 되지 않으며 우리가 어디서 실패하는지'를 우리에게 분명하게 해준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와 용서를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우리는 파악하게 된다. 그때문에 율법도 절망할 근거가 아니라, 우리에게 각종 과오들과 대처할 수 있는 예수께로 나아가게 하는 경종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자신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던 것이다 (고후 5, 19).

     세상적인 법의 적용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부조리 그 자체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왜냐햐면, 좀도둑에게 과한 형벌을 가하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재벌에게는 죄에 비해 경미하게 판결하고  집행 도중에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유로 특별사면까지 주기도 합니다. 심지어 정치적인 목적으로 수많은 무죄한 사람이 억울하게 죄인이 되기도 하고, 국기를 문란한 중죄인이 형벌은커녕 "혐의가 없다"란 정치적 장난으로 법의 심판을 벗어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과연 이들이 아무런 죄가 없을까요?!
    하나님의 법은 다릅니다. 율법은 우리의 전 존재, 우리의 생명을 요구합니다. 율법은 법조문이나 부가적인 판례들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내적 마음을 묻는 것입니다. 율법은 표현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바꾸게 됩니다. 하나님은 율법 가운데서 우리에게 "너는 어디 있느냐? 너는 누구에게 속했고 누구에게 순종하느냐?"고 질문하시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답하며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살 수 있는
복된 새로운 한 주간이 되시길......   샬~~~롬

 롬 3, 9 - 20   눅 5, 33 - 39  (지난 묵상 링크)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 3,  20)

   

 

배경 찬송은 "나 어디 거할찌라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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