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반칙과 반역의 시대

 

2013년 1월 12일

   

 

    예레미야에 의해 예언되었던 예루살렘성 파괴가 지속되어야할 70년이 거의 지나갔다. 다니엘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이제 변화를 가져오소서!"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전혀 다른 것을 행하는데, 먼저 속죄의 기도로 시작한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시인하고 "하나님, 당신은 공의를 가지셨고, 주님은 의로우십니다"라고 하나님의 심판을 인정한다.
다니엘이 예루살렘의 구원을 간구할 때, 주님께서 단지 공의로우시기 때문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에 "당신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라고 하나님이 기꺼이 용서해주실 각오를 위해서 간구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에,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완전하게 약속되었다. 이에 대해 우리들은 마음껏 기뻐할 수 있지만, 우리들은 이 긍휼을 너무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니엘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 삶 속에서 정상이 아닌 일들을 아주 진지하게 시인하는 일'도 이에 속한다.

    사람들에게서 '빼앗아 가는 시대'에 '베푸는 일'과 '복수하는 시대'에 '용서하는 일'은 기독교적인 믿음의 두가지 핵심임을 고백해 봅니다. 신앙과 전혀 관계없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이 핵심을 가장 잘 실천한 나라는 "독일 민족"을 꼽을 수 있겠고,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기는 고사하고라도 누가 누구에게 베풀고 용서를 해야만 하는지도 모르고 있는 민족은 아마 "한민족"과 "일본민족"임이 분명할 것입니다.
    한국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댓가로 가진 것을 모두 내놓고 정작 심판받고 정죄받아야 할 당사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끝없이 혜택을 받고 베품을 받는 "
반역과 반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대와 역사는 이들을 큰 아량과 사랑으로 용서하고 베풀고 있지만, 당사자들은 모순의 본질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마치 공정한 것인양 착각하는 슬픈 역사가 또한 대한민국의 현대사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렇게 거꾸로 선 상태를 "패역한 세대, 즉 하나님을 거역하는 더러운 세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패역은 신사참배에 앞섰던 한국 기독교가 맨 앞에 서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인들도 이 허물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긍휼과 용서의 은사를 받아 이웃들에게 진정으로 베풀고 용서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단 9, 1 - 19    계 22, 1 - 5   (지난 묵상 링크)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단 9, 9)

   

 

배경 찬송은 "주여 이 죄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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