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보다는 무방비로

 

2011년 5월 9일 

  

   

    오늘 말씀에는 의로운 한 무명의 용사가 등장한다. 그가 압살롬을 처치했었더라면, 그는 은 열 개를 얻을 수 있었고, 나무에 매달린 반역자를 칼로 찔러 죽이기만 하면, 그에게 은전은 확실히 보장된 것이었다. 매달려 반항하는 왕의 아들을 칼로 찔러 죽이기만 하면, 그는 은전 열 개와 띠 하나를 보상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은으로 치장한 단도로 찌름으로 그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무명의 용사는 끝까지 거절했었다. 은 천 개를 손에 쥐여준다해도 그의 뜻을 바꿀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는 다윗왕이 군인들 앞에서 "
나를 위해서 젊은 압살롬을 느그러이 대우하라"는 명령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압살롬은 보호되어야만 했었다. 이 용사에게는 "왕의 말이 은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분명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예화는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각종 말씀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아무 것도 우리의 뜻을 바꿀 수는 없다. 만군의 왕이신 예수님의 말은 금보다 더 값진 것이다.

    오늘 본문과 상징적으로 비교되는 요셉이 체험했던 '달콤한 유혹'을 생각해 봅니다. 바로의 친위대장이었던 보디발의 부인은 요셉에게 갖은 구애를 다하다 마침내 공개적으로 동침하고 싶어 몸이 달아올랐습니다. 그녀는 급기야 백주대낮에 요셉의 옷을 잡고 "나와 동침하자!"고 애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기 옷을 그녀의 손에 남겨둔 채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다시피 빠져나와 그녀의 제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던 것입니다. 이것으로써 요셉은 자신의 출세길을 망친 것은 물론이고, 전 인생이 위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달콤한 삶 속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것보다는 감옥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살고, 불의로 부요케 사는 것보다는 가난하게 의롭게 살며 무신론으로 살기보다는 아무런 보호없는 무방비로 살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에 대해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마 5, 30)고 말씀하시며, 온 영육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도처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케 하는 또 다른 음성들을 이기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복된 새로운 한주가 되시길 ....  샬~~~롬

   삼하  18, 1 - 18   고전 14, 6 - 19  (지난 묵상 링크)  

     

  

내가 내 손에 은 천 개를 받는다 할지라도 나는 왕의 아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삼하 18,  12)  

   

 

배경 찬송은 "오늘을 위한 기도"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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