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한계

 

2011년 5월 7일 

  

   

    자신의 믿음을 위한 척도와 기준을 얻기 위해 성경을 읽는 사람은 아주 다양하게 등장하는 극적 상황들에 대해 놀라며 의심을 가졌어야만 한다. 다윗에게 반역한 궁궐내의 혁명 후에 압살롬은 예루살렘 성내에서 권력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이 목적을 위해 압살롬은 아버지에게 딸린 부인들까지도 자기 소유로 취한다. 압살롬은 또한 정치 고문인 아히도벨에게 자문을 구하는데, 아히도벨은 도망가는 다윗을 뒤쫓아 신속하게 기습하라고 조언한다. 이 조언은 올바른 전술이었고 압살롬을 위해 권력보장의 관점에서 아주 지혜로운 조언이었다.

    그런데, 압살롬은 다윗이 시간을 벌도록 능수능란한 말로 조언하는 후새의 말을 따른다. 이 이야기는 너무나 극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혁명, 음모, 권력 다툼과 서로 경쟁하는 각종 술책들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칼자루를 손에 쥐고 계신다'는 사실을 파악하게 된다. 여호와 하나님은 결국 몸소 택하신 왕인 다윗 왕에게 신실하게 머무신다.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진 스위스 출신 신학자인 바르트 Karl Barth는 개신교 신학을 개혁한 "로마서 강해"의 집필은 아주 유명합니다. 1933년에 독일 본 대학교 신학부 교수로 강의하던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로 독일 교회가 믿음을 등지고 히틀러에게 선서하고자 했던 소위 "독일 기독교인들"에게 싸움을 걸었던 것입니다. 독일교회와 달리 바르트는 "히틀러가 아닌,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능력 안에서 두려움도 결국은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며, 또 할 수 있어야 함을 고백해 봅니다. 험한 세상 속에서 두려움에만 무서워 떨지말고, 주님의 뜻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삼하  16, 15 - 17, 23    15, 14 - 21  (지난 묵상 링크)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삼하 17,  14)  

   

 

배경 찬송은 박형근의 "오 신실하신 주"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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