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화하고 대담한

 

2011년 11월 5일 

  

 

    예루살렘성으로 입성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귀 새끼를 데려오게 하신다. 하필이면, 어미 나귀와 새끼 나귀였었다. 사도 마태는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란 증거"임을 기억한다. 예언서에서도 이렇게 씌여져 있다.
    이제 전적으로 다른 한 왕이 왕위에 즉위한다. 겸손하게 싸워 이기시고 통치하는 새끼 나귀 등 위에 탄 왕이 임하신다. 그는 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진리를 위한 사랑과 인간에게 향한 확고한 애정으로 온유하고 부드럽게 싸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 - 상인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또한 처음에 "호산나", 나중에는 "십자가에 못박아라!"고 외치는 전 백성들- 과의 갈등 속에서 온유하신 참된 용기를 보여주신다. 이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며 예수님의 생명까지 앗아 갔지만,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십자가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눅 23, 34)고 말씀하시기까지 머물게 된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인 것이다. 온유하심은 증오와 죽음을 이기게 된다.

     세상이 각종 전쟁과 갈등 속에서 혼돈에 빠지게 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고전 14, 33)라는 말씀으로 스스로 위로를 얻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반박할 아무 것도 없음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성경 구절은 이것으로만 끝맺지 않고,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두편으로 나뉜 그리스도인들의 개입에 양날개를 지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을 강건케 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한국 교회들은 화평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진흙탕 정치권에서 편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심지어는 화평의 하나님 말씀만을 선포해야만 하는 거룩한 설교단에서까지, 상대편을 증오하고 미워하는 일에 선동까지 일삼는 적그리스도적인 목회자들이 허다합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참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21, 1 - 11    6, 20 - 26  (지난 묵상 링크)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마 21, 5)

   

 

배경 찬송은 "긍휼"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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