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이나 갈아입으신 고난 예수

 

2012년 4월 5일

  

 

    총독에게는 이 "유대인의 왕"이 흥미로운 수수께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 왕은 사법적 살인을 위해 그에게 그리 아깝지 않았다. 군인들은 무엇인가를 덥썩 잡았고, "그가 왕이라고?! 수려한 왕이다! 군인들은 '당신이 왕이라고?'"하고 놀렸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당신과 더불어 맘대로 할 수 있다. 마침내 지루함을 이길 놀이감을 얻었네"라고 비아냥 거리면서 그들의 나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아니면, 이들은 희생자의 고통조차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희생자는 어떠한가? 어찌했거나 이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살려달라고 빌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그 어떤 한탄도, 무력한 위협도 결코 하지 않는다. 그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민중들도 조롱하게 되는 일을 예수님은 몸소 받아들이신다.

    또한, 하나님의 개입을 위한 기도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대인의 왕은 모든 폭력을 포기했었다. 예수님은 백성들을 위해 기꺼이 죽음에 임하신 것이다. 이 일을 기꺼이 영광으로 감내하셨던 것이다. 세상적인 권력형태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에 따르는 왕으로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잡히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세번씩이나 옷을 갈아입으신 일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왜냐하면, 속죄의 날에 대제사장이 했던 일이 예수님의 고난사건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이 속죄의 날의 서두서 행하듯이, 헤롯왕은 예수님께 흰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보내게 됩니다. 대제사장의 옷이 피로 붉은 색으로 물들었듯이, 로마병들은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의식 끝에 하듯 (레 16장),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님은 다시 원래 입고 계시던 옷을 입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신 참된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골고다로 향하는 고난주간이 절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꺼이 감내하셨던 고난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막 15, 16 - 23   고전 11, 23 - 26  (지난 묵상 링크)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막 15, 17 - 18)

   

 

배경 찬송은 Bach의"O Haupt voll Blut und Wunden"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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