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 대신에 영생으로 가교

 

2014년 10월 4일

      

 

    르호보암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 계획된 왕위 즉위식 조금 전에 정치적 상황은 아주 첨예하게 되었다. 백성들은 이전 왕의 통치 아래 예속에 대해 불평을 한다. "당신이 우리에게 편리한 삶을 약속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당신을 섬기겠나이다"고 왕위의 계승자는 압력을 받는다.
    아무리 좋은 조언도 이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정치적으로 후한 점수를 따기 위해 (7절), 장로들은 그에게 듣기 좋은 약속으로 백성들을 유인할 것을 제안하는 동안에, 젊은 고문들은 모든 항변들을 가라앉히기 위해 토론을 벌였다.

    왕궁에서 이런 결정 과정들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그 어떤 역할도 감당하시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시 86, 11)는 고백처럼, 르호보암은 원래 하나님께 물어볼 수 있지 않았을까?! 르호보암은 각종 타격들을 위협하며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조언을 따른다. "우리는 국민이다"는 사실을 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르호보암으로부터 멀어진다. 치명타로 유도하는 각종 조언들은 좋은 조언은 결코 아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비슷한 상황이 통독 후, 독일 사회 전반에 걸쳐 있었습니다. 독일이 통일된 이후에 "각종 조언들은 역시 타격이다"는 말이 날개 단 말이 되었던 것입니다. 많은 서독인들이 각종 조언들을 가지고 구동독 각 분야로 파견되었습니다. 서독에서 아주 좋은 조언들과 동독지역에 좋은 뜻으로 전해주려 한 것이었지만, 결코 동독 지역에 그대로 전달되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그들의 삶의 상황 속에서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 그들의 생각을 경청해야 하며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그들과 함께 살아보아야만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남북 정상이 서로 만남 없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GH정권의 "통일대박론"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고통스러운 분리를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극복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으로 조언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라, "기적의 조언, 영원한 아버지 그리고 평화의 주"로 오셨던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육신의 몸으로 인간들 가운데서 살면서, 우리를 구하고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당신의 삶을 우리와 더불어 나누셨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부터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게 영생으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을 하셨고 인간들은 예수와 더불어 살면서 함께 속하여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의 주 그리스도와 함께 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대하 10, 1 - 19  신 24, 10 - 22  (지난 묵상링크)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대하 10, 4)

   

 

배경 찬송은 "평화의 기도"입니다.

 

  10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