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들 위에 화평을

 

2015년 4월 4일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름 없는 범죄자처럼 파묻어 장사를 지내지 않는다. 시신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었다. 하나님의 도구는 고귀한 유대인인 아리마대 요셉이다. 대단한 존경심으로 요셉은 죽은 예수를 다뤘다. 세마포와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무덤은 '이미 모든 것이 사망의 상징으로 채워진 곳에 이 시신을 안치하지는 않을 것이다'는 사실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최후에 보내는 존경과 사랑의 증거인 것이다.
    십자가형을 향한 냉혹한 대조에서 장사를 지내는 이 짧은 장면은  경외심의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때문에 예수의 무덤은 결코 죽은 자들의 시신이 가득 찬 곳일 수 없다. 예수님의 마지막 옷은 이미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염 옷이 아니다.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검을 신중하고 세심하게 다루는 일과 장사를 지내는 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오늘날까지도 형제자매와 이웃들에게 기꺼이 베풀어야 할 긍휼의 계명으로 남아 있다.

     전쟁이란 이름으로, 혹은 적대감, 다른 의견이나 생각, 다른 피부색을 가진 민족 그리고 다른 종교란 이름 아래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주검을 멸시 천대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이유에서든 제대로 축복을 받지 못한 채로 묻힌 사람들은 우리의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자들은 이들을 축복하고 하나님께 위탁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정성을 다해 예수님을 장사지낸 것처럼, 이런 행동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나타내야 할 긍휼의 증거임을 고백합니다. 죽은 자들과 그 무덤 위에 화평을 간구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마 27, 57  -  66    호 5, 15 - 6, 3  (지난 묵상 링크)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깨끗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마 27, 59 - 60)

   

 

배경 찬송은 마태 수난곡 (BWV 244) "Wir setzen uns mit Tränen niede"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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