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해 무엇을 했나요??

 

2010년 12월 2일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를 무자비할 정도로 아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의 분석은 지도층의 결정권을 똑바로 겨냥하고 있다.
    국가 질서의 붕괴는 권력을 탐하고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는 삶의 당연한 귀결인 것이다. 하나님 없이는 더 이상 평화가 존재하지 않고, 혼돈만 더욱 더 팽배할 뿐이다. 무질서가 만연해지며 국가적 권위는 결국 웃음꺼리가 되고 만다.

    우리들의 삶을 인정하는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은 우리에게는 큰 행복이다. 하나님은 결코 자위적이거나 우연의 통치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기력한 자들에게는 구원을,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회개를 의미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폐허 더미를 양산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책임감 있게 함께 더불어 살도록 고무하시기 때문이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에 맞서서 한미 연합훈련으로 대응한 뒤에, 과연 한국 기독교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독일 신학자인 바르트 Karl Barth는 "국가권력이 교회 밖일 수 있지만, 결코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력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국가권력에 개입하시고, 또한 방향제시를 하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권력자들도 하나님의 종"이라고 역설한 적이 있습니다. 권력도 결국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정치적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지에 대해, "인간들의 평안과 안전을 위해 참작하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하게 국가권력이 선한 것을 권장하며, 화평을 이루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바르트 이후에 우리는 '민주주의 아래서도 지옥에 가고 독재 정권 아래서도 복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정치권력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가 결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이것은 정치권력이 호전적 내지 평화적인 외투, 작업복 아니면 잠옷을 걸치고 있느냐의 차이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말하는 우리 자신과 한국 기독교는 과연 어떤 옷을 걸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평화를 바라고 평화를 위해 중보하며 행동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3, 1 - 15    21, 10 - 27  (지난 묵상 링크)  

     

  

예루살렘이 멸망하였고 유다가 엎드러졌음은 그들의 언어와 행위가 여호와를 거역하여 그의 영광의 눈을 범하였음이라 (사 3,  8)  

   

 

배경 찬송은 "주여,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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