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가게 내버려 두라

 

2012년 4월 2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참한 결말을 선포하신다. 제자들은 "누가 배신자입니까?"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이들은 "내가 그인지요?"라고 물으면서 경악했었다. 각자 개개인이 주님을 배반할 가능성을 가진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배신자 유다가 했던 일은 소름끼치게까지 한다. 가룟 유다의 입맞춤은 구역질나는 일을 능가하는 그 무엇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누가 이 배신자를 판단하겠는가?! 누가 이러할 권리를 가졌단 말인가?! 배신을 당한 분만이 "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1절)고 판단할 권리를 가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 입에서 나오는 "화"를 또 다른 구절에서도 듣게 된다. 이것은 '심판자가 심판을 선포한다'는 것을 뜻한다. 가룟 유다에게서처럼, 화가 임하는 일이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면, "내 자신이 이에 해당될까?" 아무도 자신을 절대적으로 보증할 수 없다. 그 때문에 단 한가지, '미리 적시에 심판자의 목에 매달리는 일'만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을 심판하시는 이는 또한 우리의 구세주도 되시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의 마음 속에 악마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악행을 심어주었습니다. 4.11 총선을 앞두고 2MB 정권과 여당인 새누리당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또 한번 더 배신하는 마음을 자신들에 영혼에다 심었습니다. "불법 민간사찰"을 통해 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뿌리채로 흔드는 일로 궁지에 몰린 2MB 정권이 "사찰의 80%는 참여정부 문건" 내지는 "나도 불법사찰의 피해자이다"란 말로써, 불법과 합법을 뒤죽박죽 섞어 결국 불법을 합리화시키며 물타기 하기에 넋을 잃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들끓어 오르는 악행과 나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하는 일에 늘 불가항력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잘못을 솔직하게 뉘우쳐야 할 때, 우리들은 정작 가룟 유다가 나무에 목을 매어 죽은 것과 같이 행하지도 않으면서 어떻게든 갖은 핑계를 찾아 상황에서 모면하고자 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입을 맞추고 배신의 길을 택했고 결국 나무에 목을 매어 파멸의 길을 갔듯이, 불법 민간사찰의 증거인멸을 위해 하드 디스크의 물리적 파괴까지도 감행한 불법 민간사찰의 당사자들은 갖은 어리석음으로 변명을 일삼다가 결국 총선의 나무에다 전신을 매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
유다가 차라리 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라고 심판하신 말씀을 빌리면,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서는 "이러한 정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인지도 모릅니다. 고난주간이 열리게 됩니다. 이미 행한 잘못을 깨닫고 뉘우칠 수 있도록 형제자매를 위해 중보하는 고난주간, 복된 새로운 한주가 되시길....  샬~~~롬

   막 14, 43 - 52   계 14, 1 - 5  (지난 묵상 링크)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막 14, 45)

   

 

배경 찬송은 "Ich stehe hier an deinem Kreuz"입니다.

배경찬송 음원을 제공해 주실 교회나 성가대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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