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품안으로 돌아가는 길

 

2013년 2월 2일

   

 

    세례 요한은 그리 까다롭지 않다. 그가 사람들을 회개로 초청할 때, 터놓고 자기 의견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지 "무슨 일을 해야만 하지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간단해서 이것을 감히 믿을 수 없다. 대단한 행동과 허풍 떠는 해명도 아닌, "회개에 합당한 열매", 즉 일상 속에서 단순한 인간적 존재이다.
    그런데, 누구나 '이것을 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안다. 이것은 우리 일상 생활의 사소함 가운데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고통으로 이끌게 된다. 세례 요한은 우리들에게 어차피 전혀 효력이 없을, 세상을 번화시킬 대단한 이론을 우리 일상 속으로, 실제 삶의 한가운데로 가져온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인간관계 속에서의 서로서로 친절함, 아프고 병든 사람을 방문하는 일이나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단순히 접시 닦는 일 같은 일들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것은 근본적으로 어떤 불가능한 일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하늘에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들은 단순히 자비롭고자 하는 것이다.

    흔히들 참회와 속죄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면, '우리 인간들의 전 삶이 회개와 참회가 되어야 한다'고 예수님이 의도하셨다"고 루터 Martin Luther의 명제를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경건이 너무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참회를 마치 "아무런 낙이 없는 체벌"로만 잘못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루터의 명제를 "단지 참회인 삶은 도대체 무슨 삶이란 말인가?"라고 아주 끔찍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참회는 잘못된 삶으로부터 되돌아서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보다 더 아름답고 나은 삶이 세상 어디에도 결코 없을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들에게 기쁨을 전하는 기쁜 소식이지, 결코 고통과 슬픔을 전하는 소식이 아님을 고백해 봅니다.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품으로 온전히 되돌아 갈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샬~~~롬

    눅 3, 7 - 14    출 2, 1 - 10  (지난 묵상 링크)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눅 3, 8)

   

 

배경 찬송은 "부르신 곳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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