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과 폭력에도 불구하고 화평은

 

2013년 8월 1일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소식은 "평화의 과정" 뒤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서술되어 지는 '끔찍한 전쟁 소동'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파악하게 두지 않는다.
    선지자는 여러 번에 걸친 폭력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먼저 바벨론과 앗시리아 군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점차적으로 나라를 빼앗았고 사랑하는 예루살렘 성을 파괴하고 능욕했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방관하셨을까? 이 사건은 아주 불안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파괴자들의 나라가 망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이후 세대들은 그들이 고향으로 되돌아가도 된다는 사실을 체험했었다.

    이 모든 것이 복수, 남의 불행을 고소해하는 기쁨 그리고 응징의 감이 들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망각한 적의 군사력보다, 물론 이스라엘 군사력보다도 더 막강하다'는 거의 믿을 수 없는 체험이 주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들이 가진 자료들을 가지고 역사를 기술하고자 하면 주의 깊게 행동해야 하는 일이 중요하다.

    지구 상에 거의 모든 나라들은 국방을 위해서나 불의하게 취급받는 다른 나라를 돕기 위해 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악은 섬멸되고  세상은 선하게 될 것이다"는 비전과 함께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수한 경우에 인간적인 무력 위협이 악한 행위들로부터 이웃을 보호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런 위험 속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유대교나 기독교의 입장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레 19, 18)에서처럼 분명합니다. 이것만이 장기적으로 폭력자들을 저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평화를 관철할 폭력수단은 가지고 있지 않고 또한 자주 실패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평화를 위해 우리들 편에 서 주실 것입니다. 각양의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무력과 폭력에 굴하지 않고, 마침내 조국 땅에 만백성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인 화평과 정의를 이룰 수 있는 복된 팔월, 팔월의 초하루가 되시길......  샬~~~롬

    나 1, 15 - 2, 14   히 10, 26 - 31  (지난 묵상 링크)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나 1, 15)

   

 

배경 찬송은 Bach의 "주린 자에게 네 빵을 나누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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