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떼어내고서

 

2012년 8월 1일

  

 

    하나님께서 구원, 즉 생명을 "십자가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셨던 사실을 일반적인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들 사고의 틀 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셨고, 이것으로 세상을 구원하셨다'는 사실은 들어맞지 않는다.
    철학자들의 현명한 사상구조와 대단한 하나님의 형상이 흔들리게 되었고 포기되어져야만 했다. 십자가에 못박힌 자가 엄연하게 부활해서 살아있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은 알려지게 된다. 예수님이 우리를 제자로 부르시는 사실은 단지 믿음 안에서, 하나님에게 무조건적인 믿음 안에서 체험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한 자를 따르는 사람은 삶속에서 성공과 실패 속에서 이겨낼 힘을 하나님으로부터 얻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오로지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에게 순종하고 따르고자 하는 것을 아는 곳에는 믿는 자들의 화합과 단결이 있게 된다.

    십자가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교파적인 행사에서 다른 종파나 교파에 속한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기 위해, 예배당이나 교회 건물 내에서 "십자가를 떼고자 하는 일"은 흔히들 있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말하지 않고서 어떻게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있을런지 자문해 보게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종파에 초청되었을 때, 유대교인들이 토라를 없애거나 회교도들이 코란을 덮어두거나, 불교인들이 불상을 덮어두고 그리스도인들을 초대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일은 물론이고, 다른 종교를 업신여기는 오만을 범하지 않는 복된 팔월이 되시길....  샬~~~롬

   고전 1, 18 - 25    2, 1 - 7  (지난 묵상 링크)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 1, 23)

   

 

배경 찬송은 "Ich stehe hier an deinem Kreuz"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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