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의 대상과 범위

 

2014년 4월 1일

     

 

    택함을 받은 사람은 "엘리트"에 속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별 인사에서 말해지고 있는 엘리트는 무엇을 통해 특징지어진다는 말인가?  오늘 본문은 단지 한가지  주제, 즉 '사랑의 계명'에 대해서다. 이것은 원래 우리 모든 인간들을 위한 기본 계명이기도 하다.
     이미 레위기에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레 19, 18)고 말하고 있다. 자기 자신에게 사랑, 즉 주어진 규범은 비실제적인 감격과 혼돈으로부터 사랑을 보호한다.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은 어느 정도 아주 객관적인 것이다. 단순히 우리 자신에게 선하게 여겨지고 단순히 우리 자신이기 때문에, 큰 감정 없이도 우리는 날마다 수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것이 내 계명이니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서로 사랑하라"는 다른 척도를 제시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들의 사랑을 위한 척도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이 사랑은 선물인 것이다. 척도로서 모두가 이에 실패해야만 했었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척도 없이도 모든 것을 베푸신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택하시고 "우리가 가서 열매를 맺도록" 능력을 주시며 우리를 임명하신다.

    오늘 말씀과 연관해서 "이웃사랑"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웃사랑은 성스러운 사람들을 위한 높은 도덕성이 결코 아닙니다. 이웃사랑은 '이웃에게 선하게 될 수 있는 일을 인정하며 순간적으로 이웃의 입장에 처해보는' 근본적인 능력과 더불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신도 좌석이 필요하지만, 연로한 할머니가 만원 버스에서 지칠대로 지친 어린 학생에게 가방을 받아주거나 심지어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입니다. 이 장면의 참된 가치는 할머니가 어린 학생에게 자리를 양보한 행위에 실제적인 도움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대하는 관심과 애정에 놓여있을 것입니다. 택함을 받아 믿게 된 자로서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  샬~~~롬

    요 15, 9 - 17   욥 9, 14 - 35   (지난 묵상링크)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요 15, 16)

   

 

배경 음악은 "내가 너를 사랑함이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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